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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쩌다 '기후악당' 이어 '해양악당'이 되었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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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을 지연시켜온 한국에 시선이 쏠릴 것이다.” “정부 간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생태계 보호보다는 단기적인 이익만 우선시하며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한국의 기존 약속과 상반된다.”

한국 정부가 해양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한 유엔협약 협상의 발목을 잡고, 걸림돌 역할을 해온 것으로 인해 국내외 환경단체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책임을 다하지 않는 태도로 인해 ‘기후악당’으로 불리는 것에 이어 ‘해양악당’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쓸 위기에 놓였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3일 시민환경연구소와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등에 따르면 유엔의 ‘국가관할권 이원지역의 해양생물다양성(BBNJ)’ 국제협약 논의에서 한국 정부 대표단은 협상을 지연시키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시민환경연구소와 그린피스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한국 정부 대표단은 2006년 2월 열린 BBNJ 관련 비공식 작업반 회의에서 공해상에 해양보호구역을 지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또 2014년 4월 열린 비공식 작업반 회의에서도 공해상의 어업에 대한 국제적인 규제 공백이 없다면서 대부분 국가들이 이루고 있는 공감대와 정반대되는 내용을 주장했다.

그린피스 인턴 펭귄 ‘똑이’가 해양수산부 문성혁 장관에게 보낼 전 세계 시민 약 310만 명의 서명이 담긴 편지를 들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인턴 펭귄 ‘똑이’가 해양수산부 문성혁 장관에게 보낼 전 세계 시민 약 310만 명의 서명이 담긴 편지를 들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또 2015년 1월 열린 비공식 작업반 회의에서는 아예 유엔 총회에 제출할 권고안 자체를 삭제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 열린 정부간 회의에서는 대다수 국가들이 생물다양성 정보공유체계 관련 사항에 지지를 표명했음에도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이밖에도 한국 정부 대표단은 국제협약 체결을 지연시키고, 협약을 유명무실화시키려는 의도를 계속해서 드러내왔다.

BBNJ 협약은 현재 국제적인 규제 사각지대라 할 수 있는 공해 등에 해양보호구역(MPA)를 설치하고, 해양에서 채취되는 유전자원을 통한 이익을 국제적으로 형평성있게 공유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2004년 유엔 총회에서 처음 관련 결의안이 채택됐고, 2006~2015년 사이 9차례의 작업반 회의, 2016~2017년 사이 4차례의 준비위원회, 지난해까지 총 3차례 열린 정부간 회의를 통해 협약문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마지막 회의인 제4차 정부간 회의는 당초 지난 3월 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연기된 상태다.

BBNJ 협약이 생물다양성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세계 대부분 국가로부터 공감대를 얻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 기후악당에 이어 해양악당국가로 등극해도 변명할 말이 없어보인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기후악당국가로 불리게 된 것은 2016년부터다. 당시 국제 기후변화 연구기관들은 한국을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무책임하고 게으른 국가를 뜻하는 세계 4대 기후악당국가로 선정한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 등과 함께였다.

한국 정부 대표단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에 대해 그린피스 국제본부 제니퍼 모르간 사무총장은 제3차 정부간 회의가 개최되고 있던 지난해 8월 로이터통신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2020년 상반기에 열릴 최종협상에서 각국 정부가 국제협약이 체결되도록 협력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협상을 지연시켜온 러시아, 아이슬란드, 한국에 시선이 쏠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BBNJ 국제협약 협상의 발목을 잡아온 한국 정부의 행태에 대해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또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지난 4월 해양수산부와 외교부에 전달한 서한에서 “그동안 진행된 유엔 BBNJ 정부 간 회의에서 한국 정부 대표단은 생태계 보호보다는 수산업계의 단기적인 이익을 우선시하며 보호구역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강력한 협정의 체결에는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이어 “이는 생물다양성협약과 유엔지속가능개발목표의 해양 보호구역 확대 목표 달성에 동참하겠다는 한국의 기존 약속과 상반된다”고 지적했다. 그린피스는 당시 해수부와 외교부에 전 세계 310만명이 참여한 해양보호구역 확대를 위한 서명도 전달했다.

2017년말 남극 수역 어장이 폐쇄된 이후 이빨고기를 잡은 사실이 미국 당국에 의해 확인된 한국 국적 원양어선 서던오션호. 해양수산부 제공

2017년말 남극 수역 어장이 폐쇄된 이후 이빨고기를 잡은 사실이 미국 당국에 의해 확인된 한국 국적 원양어선 서던오션호. 해양수산부 제공

한국 정부가 이처럼 다수 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우면서까지 국제협약 체결을 지연시키는 것은 해양수산업, 특히 원양어업을 통한 이익 때문이다. 공해상의 어획량이 세계 6위일 정도로 원양어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국익을 위해서라면 ‘해양악당’이 되어도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실제 2002~2011년 사이 한국의 공해상 어획량은 전 세계 공해상 어획량의 6.1%를 차지했고, 이는 국내 총 어획량에서도 11.9%라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익뿐 아니라 식량자원의 안정적인 확보 차원에서도 원양어업이 중요하지 않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시민환경연구소와 그린피스 등에 따르면 국익과 식량자원 확보 등에 대한 주장들은 허상에 불과하다. 원양어업이 산업 및 경제분야에 일정 정도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원양어업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한국의 공해상 어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약 8억달러 정도지만 정부 보조금과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수익은 2억200만달러에서 2억5400만달러로 줄어든다. 정부 보조금이 약 4억달러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정부 보조금이 수익의 2배가량에 달하는 것이다. 즉, 정부 보조금을 제외하면 한국 공해상 어업의 수익성은 현저히 떨어지고 만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주된 근거는 식량자원 확보인데 국내 총 어획량의 10분의 1이 넘는 원양어업의 대표 어종 참치는 생산량의 약 86%가 수출된다. 식량주권 확보라는 공적 가치에 기여한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국제·국내 환경단체뿐 아니라 국내 학계와 시민사회의 전문가들 역시 BBNJ 협약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민환경연구소가 지난 4월 학계 및 시민사회 전문가 대상으로 실시한 현 정부의 환경·에너지 정책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1.9%는 BBNJ 협약 관련 정부의 대응 방식에 대해 반대(12.4%)와 대체로 반대(29.5%) 입장을 보였다. 이는 찬성(1.9%)과 대체로 찬성(21.9%) 입장이라고 답한 이들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게다가 한국 원양업계의 저층트롤어업은 해양환경파괴로 인해 이전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저층트롤어업 방식은 바닥부터 바다를 싹쓸이하는 어획방식인 탓에 잡히는 물고기의 절반 이상이 혼획의 희생양이 된다. 여기엔 물고기뿐 아니라 거북이, 바닷새 등도 포함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새우 1마리를 잡기 위해 최대 10마리의 물고기가 혼획된 후 버려지는데 이 물고기들은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죽은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체 투척으로 인한 해양환경 오염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어망을 바다 깊숙이 가라앉히기 위해 이른바 ‘바닷속 벌목’이 이뤄지는 점도 문제다. 건물 3층 높이에 축구장 넓이인 거대한 어망이 해저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해양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파괴적 어업이라는 이유로 유럽의회는 북동대서양 해저생태계의 보호를 위해 이 어획방식을 금지한 바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해산(海山)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환경파괴의 95%가 원양 저인망 어업탓에 발생한다. 세계식량기구의 2009년 자료에 따르면 세계에서 공해 어업을 위한 저인망어선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60척의 스페인이고, 한국은 33척으로 두번째로 많은 저인망어선을 보유하고 있다.

밤에 빛을 내고 있는 크릴떼. 그린피스 제공.

밤에 빛을 내고 있는 크릴떼. 그린피스 제공.

BBNJ 협약이 체결되고 해양보호구역이 확대되면 남극 생태계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크릴의 남획도 막을 수 있다. 펭귄, 바닷새, 물범, 다양한 물고기, 고래의 먹잇감인 크릴은 최근 각종 영양제와 낚시 미끼 등으로 각광 받으면서 대량으로 남획되고 있다. 그린피스는 크릴 등 생태계의 기반이 되는 어종들이 고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남극을 포함한 전 세계 바다의 3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환경연구소는 또 중국의 원양어선단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한국은 BBNJ 국제협약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원양어선단은 전 세계 원양 어선단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 20년 사이 규모를 부쩍 키운 상태다.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남획으로 인한 어종 고갈 때문에 원양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BBNJ 국제협약 등의 국제규제 강화를 통해 불법적이고, 파괴적인 어업을 자행하며 공해상 수산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는 중국 원양어선단을 견제하는 것은 해양환경 보전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한국 원양어업계에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시민환경연구소 김은희 부소장은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할 시점이지만 한국 정부 대표단은 BBNJ 협약이 산업계에 미칠 영향부터 우선 고려하는 태도를 고수해 왔다”며 “2006년부터 한국 정부 대표단이 발언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마치 BBNJ 협약이 한국의 관련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아주 나쁜 협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의 정부 대응을 위해 다양한 해양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는지 묻고 싶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마지막 남은 정부간회의가 언제 개최될지 미지수이지만 정부가 BBNJ 협약의 취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 이전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대응하도록 변화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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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3, 2020 at 04:15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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