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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국민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후안 로하스(왼쪽)와 손녀 발렌티나 로하스 마르티네스. 로하스 제공
발렌티나 로하스 마르티네스 콜롬비아 보고타 세종학당 학생 전쟁은 할아버지의 화나고 슬픈 얼굴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 시절 사촌들과 모여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려고 하자 할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일어나 산책을 가버리셨습니다. 고모는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하셨을 때 친구를 여럿 잃으셨고, 그때의 기억을 고통으로 간직하며 살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와 삼촌들은 종종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때였는데 할아버지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저는 막연히 한국을 ‘굉장히 슬픈 사연의 나라’로 알고 지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할아버지도 조금씩 한국과 관련한 추억을 얘기해주셨습니다. “하루는 아침에 눈을 떠보니 막사와 주변이 온통 흰색과 회색으로 덮여 있었다. 밤새 적에게 공격을 받은 줄 알았는데 동료가 그게 눈이라고 말해줬다. 꿈을 꾸는 것 같았는데 아무튼 그날 몹시 춥더구나.” 할아버지의 짧은 말씀에서 저는 잠시 이국땅에서의 새로운 경험에 들뜬 청년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할아버지께 왜 한국전 참전을 결심하셨는지 여쭤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해서 한국행을 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콜롬비아 내륙 지방인 톨리마주 출신이십니다. 당시 콜롬비아는 의무병제가 있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했는데 할아버지는 1951년 유엔군으로 지원하신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배를 타고 바다를 볼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 할아버지는 멋지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가는 길은 실제로 배를 타는 아주 긴 여행이었습니다. 파나마 운하를 가로지를 때 처음 보는 새들이 지저귀고, 숲에서는 원숭이가, 바다에서는 물고기가 뛰어올랐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할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웃으셨습니다. 영웅적인 참전 이유를 기대하신 분들께는 실망스러운 답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다를 보겠다는 소박한 소망으로 참전해 역사의 변화에 기여하신 할아버지를 보며 저는 많은 것을 배웁니다. 함께하는 동료를 신뢰하지 못하면 밤에 쉴 수 없었을 거라는 말씀, 역사는 이렇게 작은 개인이 바꿔가는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 저는 일상의 무게감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대한민국은 참전용사 후손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한국 유학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는 당신이 장학금을 받으시는 것처럼 기뻐하셨습니다. 저는 한국 유학을 꿈꾸며 콜롬비아 보고타 세종학당에서 2학기째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올해 7월20일 90살이 되십니다. 얼마 전 한국의 대도시 사진을 보여드렸는데 꼭 영화에 나오는 곳 같다며 놀라셨습니다. 가는 데만 두달이 걸렸던, 전쟁의 고통과 아픔에 신음하던 나라가 이렇게 성장한 것을 보니 모래알같이 작은 힘을 합쳤던 그 시간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하십니다. 한국의 성장과 발전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줍니다. 7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손녀인 저는 공부라는 또 다른 꿈을 위해 한국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70년 전 한국전쟁에서 할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저도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웃음과 용기로 극복하고 꿈을 향해 앞으로 나가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이 글은 스페인어로 작성된 원문을 콜롬비아의 세종학당 관계자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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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4, 2020 at 04:2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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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70년 전 할아버지께 배운 것 / 발렌티나 로하스 마르티네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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