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시야로 본 숙소인 지트 쿠벨카(Gîte Kuberka)는 뜻밖에 정상적(?)이었다. 냉장고와 수영장까지 있었다. 뉴칼레도니아를 여행하면서 기대감을 최저로 낮춘 습관 덕인지도 모르겠다. 더 큰 기쁨을 위한 방어기제랄까. 입실 준비가 안 되었길래 바로 앞 쿠토(Kuto) 해변으로 나갔다. 기대했던 바다를 볼 수 있을까. 날씨가 이리도 끄물끄물한데….
순간, 가슴 한 켠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방방 뛰었다. 그 바다다. 남사스럽게 두 팔을 펼쳤다. 물 색깔이 충격적이었다. 속을 훤히 드러내며 마음까지 비추는 바다다. 세상의 어떤 형용사로도 저 바다를 표현할 순 없을 것이다. 가루 같은 모래는 발바닥을 포근하게 감쌌다. 산에서나 어울릴 내 반바지가 사뭇 부끄러웠다. 이 바다는 새하얀 '시스루 드레스'로 거닐어야 마땅한, 백치미의 자연이었다.
충격은 다른 식으로도 왔다. 그날 밤 숙소에서 저녁을 주문했다. 일데팡의 숙소는 잠자리 기능에만 충실한 게 아니다. 멀티플레이어다. 가이드도 되고, 택시 중개인도 되며, 식당이 되기도 한다. 단, 오후 4시 이전에 미리 주문하지 않으면 선택 가능한 메뉴가 다섯 손가락 안으로 줄어든다. 닭고기, 생선, 그리고 달팽이 요리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물자 수급이 부족한 섬의 특성이려니, 이해했다.
촛불이 놓인 식탁에서 어항의 물고기를 관찰하며 기다렸다. 물고기 수를 세다가 생김새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혹 우릴 또 잊었나 싶어 종업원이 지나갈 때마다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1시간의 기다림 끝에 나온 접시. 지상 최대의 반찬인 허기를 노린 것인가. 시식용인가? 식전 음식인가? 아니다. 우리가 주문한 정식 메뉴였다. 내가 주문한 요리는 고사리 손바닥만한 생선 세 점과 밥, 탕탕의 닭고기 요리는 더 불쌍해 보였다. 평시라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법한 살점 없는 부위와 차디찬 감자튀김이었다. 더구나 주방장은 미각을 잃은 게 분명했다. 추후 알게 된 이 음식의 가격은 각각 2,000프랑(약 2만2,000원)과 2,800프랑(약 3만1,000원). 아무래도 접시와 나이프, 포크 가격까지 포함된 것 같다. 이토록 아름다운 섬에서 이토록 부실한 식사라니. 배낭여행자의 주머니로는 너무 혹독한 섬이다. 다음날 저녁이 벌써 두려워졌다.
일데팡에서 자유여행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 육상과 해상을 통해서다. 육상은 렌터카 혹은 스쿠터를 이용한다. 스쿠터를 택했다. 섬을 한 바퀴를 도는 데 40km 안팎이다. '야타족'의 젊음을 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스쿠터 대여는 당일 선착순이다. 경쟁 의식이 발동해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로 예약했다. 레게 머리의 청년이 스쿠터를 대령해오고, 계약서를 쓴 뒤 바람처럼 사라졌다. 오르막길에서 시속 20km를 넘지 못할 거란 조언 따위는 없었다. 이 50cc 스쿠터는 평균 몸무게에서 벗어나지 않는 우릴 꽤 버거워했다.
스쿠터 일주의 백미는 동쪽의 오로(Oro)와 남서쪽의 쿠토(Kuto) 및 카누메라(Kanumera), 그리고 남쪽의 바오(Vao) 방면이다. 그중 바오는 섬의 대표 마을로, 일데팡의 역사를 수줍게 드러낸다. 일데팡은 1774년 제임스 쿡 선장이 태평양을 두 번째 항해할 당시 지은 이름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섬엔 소나무가 많았던 모양이다. 일데팡을 직역하면 소나무의 섬이다.
지도에 없던 일데팡은 이후 여러 종교의 포교 활동과 나무 교역으로 다른 세상과 만나게 된다. 토착민은 당시 가톨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증거가 바오의 19세기 교회, 그리고 생 모리스 동상이다. 교회 단상에는 육중한 거인을 상징하는 다리 조각이 있고, 동상 주위로는 악귀를 물리치는 목각 기둥이 둘러싸고 있다. 둘 다 쿠니에(Kuniè)로 알려진 원주민의 토템과 가톨릭교와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다. 교회는 소나무 숲 한가운데, 동상은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다. 미적 감각이 일품이다. 평화도 오손도손 모여들었다.
사실 일데팡은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작은 섬과 동쪽으로 150km나 떨어진 월폴(walpole)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다. 따라서 자유여행의 두 번째 방법은 배로 섬 주변을 탐방하는 것이다. 원주민의 카누인 피록(Piroque)을 탄다. 고기잡이에 쓰이던 어선이 오늘날은 여행자를 태운다. 안전상 규모를 키우고 돛단배에 가깝게 개조했다. 바오의 생 조세프(St Joseph) 베이에서 출발한 피록은 좁은 수로를 관통해 오로(Oro) 베이에 닿는다. 일데팡의 유일한 공식 택시다.
간조의 바다는 호수와 같았다. 유피 베이로 접어들면서는 부표처럼 띄워진 암벽의 앞과 뒤, 옆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피록은 한 해변에 일행을 떨구어 놓았다. 선장(?)은 건성으로 갈 길을 손가락질했다. 이정표도 없는 곳에서 예상치 못한 정글 투어가 시작됐다. 목적지는 오로 자연 풀장. 스쿠터 여행 때 도전했다가 좌절을 맛본 곳이다.
르메르디앙 호텔을 관통하려 했지만 투숙객이 아닌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샛길로 눈을 돌리니 만조에 이른 바다가 가로막았다. 허리까지 물이 차올라 자칫 카메라를 바다에 빠뜨릴 뻔했다. 어떤 길을 통하든 자연 풀장까지는 걷기의 수고가 따랐다. 탐험의 욕구에 불을 지핀다.
50여분의 트레킹 끝에 하얀 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풀장은 쑥쑥 솟은 소나무와 키 낮은 관목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태양이 가려진 탓인지, 쿠토 해변에서 만끽한 초롱초롱한 바다는 아니었다. 그래도 풀장 속이 보석이다. 풀장은 태평양에서 새어 들어온 밀물이 좁은 암벽에 가둬지면서 생성됐다. 당연히 밀물 따라 물고기도 놀러 온다. 낯선 조개도 보인다. 화려하고 다양한 색을 품은 조개가 조물조물 입을 열었다 닫는다. 형광으로 빛을 뿜는다. 시시각각 쇼가 펼쳐지는 천연 수족관이다.
밀물이 들어오는 암벽 가까이 갈수록 바닷속은 물의 정원이 된다. 붉고 노란 산호초 가운데서 손톱만한 작은 물고기부터 대형 물고기까지 춤을 춘다. 가끔 카메라에 덤비기도 한다. 밀어붙이는 물살에 반항하다가도 그 흐름에 몸을 맡겨 부양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를 타기 위해선 다시 걸어야 했다. 만조가 되기 전에 바쁜 걸음을 뗐다. 갑자기 기세등등해진 태양 아래 천국으로 변한 오로 해변에 가슴을 쓸어내리다 보니 파티장에 닿았다. 시끌벅적하다. 모든 숙소에 광고지를 뿌려대던, 코네아케(Kô-ngé-âa-ké) 레스토랑이었다. 길다란 식탁이 대형 로브스터 요리로 비좁아 보였다. 샌드위치로 허기를 면한 우린 맥주를 주문했다. 아차, 간과했다. 일데팡은 일부 레스토랑과 바에서만 주류 판매가 허용된다. 당국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다. 집에서든 거리에서든 취하는 건 꼴불견이란다.
탄산 음료를 주문하고 바다를 보았다. 내가 바다를 보는지, 바다가 나를 보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숙소로 가기 전 작은 상점에 들렀다. 기분이라도 내겠다고 맥주를 샀다. 무늬만 맥주인 무알코올 음료다. 그래도 건배! 아직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저 바다를 위하여!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June 27, 2020 at 08: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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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다인지, 바다가 나인지...뉴칼레도니아의 '시스루' 물빛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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