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 미국 PBS방송에서 그림 그리기 방송을 한 밥 로스는 물감들을 자유자재로 섞어 다양한 색을 구현했다. 그러면서 그림 그리기가 참 쉽다고 했다.
태평양 산호초에 사는 열대어인 에인절피시도 밥 로스에 필적할 색채감을 가졌다. 파란색 등지느러미에서 노란색 배로 이어지는 에인절피시 ‘베스타 멀티파시아타(Venusta multifasciata)’는 줄무늬 에인절피시와 보라가면 에인절피시를 교묘하게 섞은 모습이다.
호주 시드니대의 사이먼 호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 국제 학술지 ‘왕립학회보 B’에 “에인절피시 종의 48%가 다른 종과 교배해 잡종을 만든다”고 밝혔다.
이는 산호초에 사는 물고기 중에서 단연 1위이다. 과거에는 에인절피시와 가까운 나비고기가 종의 3분의 1이 잡종을 만들어 이 분야 기록을 갖고 있었다.
◇1000만년 DNA 변화도 극복해
호 교수와 논문 제1저자인 박사과정의 이-카이 테아 연구원은 산호초에 사는 에인절피시들이 서로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다는 점에서 여러 종이 섞인 잡종들이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이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잡종 37종의 미토콘트드리아 DNA를 다른 순종들과 비교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母系)로만 유전돼 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데 활용된다. 그 결과 에인절피시 종의 절반에 가까운 42종이 잡종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심지어 미토콘드리아 DNA가 11%나 다른 종끼리도 잡종을 탄생시켰다. 이 정도면 1000만년 동안 진화하면서 DNA가 달라진 것과 마찬가지다. 테아 연구원은 “미토콘드리아 DNA가 2% 이상 차이가 나면 잡종이 나오기 어렵다고 알려진 만큼 극히 놀랄 만한 일”이라며 “이 정도로 진화 과정에서 떨어진 종끼리 잡종을 만드는 것은 암호랑이와 수사자가 만나 라이거를 탄생시킨 것과 같다”고 밝혔다.
DNA 11% 차이를 극복한 사례는 황제 에인절피시와 파란고리 에인절피시 사이에 태어난 잡종이다. 어린 황제 에인절피시는 희고 파란 원들이 도자기의 나이테 무늬 모양을 이룬다. 꼬리에는 흰 테가 있다. 어린 파란고리 에인절피시는 희고 푸른 줄이 갈지자 모양으로 나있다. 두 물고기가 짝짓기하면 동심원과 갈지자가 섞여 마치 미로찾기 책에 나오는 것과 같은 무늬를 만든다.
◇일부다처 짝짓기 습성이 잡종 유발
일반적으로 잡종은 종들의 서식지 경계선에서 태어난다. 이를테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국경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다. 반면 에인절피시는 같은 산호초에서 잡종을 만들었다. 이는 진화 과정에서 아무런 이득이 없다. 같은 곳에 사는 두 종이 반복적으로 짝짓기하면 결국 두 종이 한 종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에인절피시의 잡종은 독특한 짝짓기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추정했다. 나비고기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지만, 에인절피시는 수컷 한 마리가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일부다처제를 택했다. 수컷이 암컷을 만나면 둘이 산호초 위로 헤엄쳐 올라가 정자와 난자를 방출한다. 이 과정에서 물 가운데 떠있는 난자가 산호초에 같이 사는 다른 종의 정자와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September 02, 2020 at 09:22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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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샷] '바다의 라이거' 에인절피시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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