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류 등 박물학 관심 증대로
조선후기 물고기 그림 급증
치밀하고 사실적 묘사 화풍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 모습
답답한 삶의 현실 벗어나고픈
백성의 희망·해탈의 염원 담아
우리민족 진솔한 미의식 반영
요즘은 TV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대중의 취미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중에 낚시를 주제로 연예인들이 물고기를 잡으면서 그 속에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되는데 물고기를 잡는 순간의 쾌감도 흥분되지만 지금까지 모르던 물고기의 이름과 형태를 자세히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재미났다.
우리나라에는 물고기를 주제로 한 어해도(魚蟹圖)는 한자 그대로 물고기(魚)와 게(蟹)의 그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바다와 민물의 구분 없이 물 속에 사는 수중 생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일컫는다.
어해도는 그림의 내용에 물고기의 배경과 포즈에 따라 어락도(魚樂圖), 유어도(遊魚圖),약리도(躍鯉圖)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해도는 어찌됐건 물고기가 주인공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어해도의 기원을 따지자면 벽화에서부터 도자기에 그려진 것까지 무수히 많지만 그림의 한 장르로서 어해도는 조선 중기까지는 현전(現前)하는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도외시되던 분야였다. 그런 어해도가 19세기 이후 민화에서는 급증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현전하는 작품이 많다. 그렇다면 왜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물고기 그림이 갑자기 급증했던 것일까? 혹시 그 시절에도 낚시가 백성의 취미로 대세였을까?
한국적 어해도 화풍이 성립된 조선 중기는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성리학의 모순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학문인 실학이 발전했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고가 크게 중시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시켰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17∼18세기의 문인들의 관물인식(觀物認識)변화와 조선 땅에서 나고 자라는 동·식물 및 어류에 대한 박물학적인 관심이 증대되고, 동시에 어해도의 성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림 1> 초정 박제가(1750~1805)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다.
그는 ‘열하일기’의 작자 연암 박지원의 문하인데 당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청나라의 정치, 문화를 적극적 받아들여 실용(實用)의 세계로 이끌고자 했던 실학자였다.
박제가의 그림 어락도(魚樂圖) 안에 여러 마리의 물고기들이 놀고 있다.
큰 물고기 두 마리는 새우를 사냥하려 다가가고 또 한 마리가 옆에서 다가온다.
피라미 같은 작은 물고기들이 큰 물고기를 따른다. 새우가 경계를 하며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 조선의 그림은 전통적인 동양화 화풍에 따라 먹의 농담(濃淡)과 간솔한 필치를 이용하여 관념성에 중점을 두고 그려지는데, 박제가의 어락도(魚樂圖)는 매우 사실적이고 치밀하다. 물고기의 입, 비늘, 지느러미의 모양까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계 문명의 흐름에서 소외된 조선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자 했던 실학자다운 직관적 사물 인식 태도가 그림의 배경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적 어해도 양식이 확립된 시기는 18세기∼19세기 정도이며 한국적 어해도상의 확립과 병풍형식 어해도의 창안 및 치밀한 사생에 근거한 사실적 묘사가 화풍으로 정립되었다.
민화에서는 어해도는 물고기가 모든 복의 근원이라는 기조에 온갖 복이 다 들어오기를 바라는 복합화의 양상으로 변화하는데 그 의미와 상징을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부부화합(夫婦和合)과 다산(多産)의 의미를 담고 있다.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는 생물 가운데 하나이므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여 부인 방이나 신혼 방에 장식되었고, 부녀자들의 노리개 삼작에도 많이 응용되었다.
두 번째, 입신출세(立身出世)의 상징이다. 민화 어해도에는 큰 잉어 한마리가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그림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를 약리도(躍鯉圖) 또는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라고도 한다. 이른 봄철에 강물이 불어나서 역류하는 물결이 일 때면 늙은 잉어들이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서로 다투어 뛰어오르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폭포를 뛰어오르면 천둥과 번개가 쳐서 잉어의 꼬리를 불태워 용이 되었다고 하며 이는 곧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출세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림 2> 마지막으로 학문하는 자세와 관련된 삼여(三餘)의 상징이다. 물고기 세 마리만을 그린 경우에 삼여도(三餘圖)라 하는데, 이는 삼국지 위지 왕숙 전(三國志 魏志 王肅傳 )주(住) 나오는 그 내용을 보면, “어떤 사람이 동우에게 배움을 청하자 책을 백 권만 읽으면 뜻이 저절로 통한다며 거절하므로, 그 사람이 매일 쪼들리고 바쁘지 않은 날이 없어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자, 다시 동우가 말하기를, 학문을 하는데 세 가지 여가만 있으면 충분하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여가 시간이란 밤, 겨울, 그리고 흐린 날을 말한다. 밤은 하루의 나머지 시간 야자일지여(夜者日之餘)이고, 겨울은 일 년의 나머지 동자세지여(冬者歲之餘)이며, 흐리거나 비오는 날은 맑게 갠 날의 나머지 음우자시지여 (陰雨者時之餘)인 것이다. 이 삼여를 물고기 세 마리로 표현한 것은 물고기 ‘어 魚’와 ‘여餘‘의 발음이 중국어로 서로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고기는 세 마리를 그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된다. 삼여라는 말은 학문하는 태도를 일깨워주는 말이기 때문에 비록 물고기를 그린 그림이라 하더라도 그 뜻을 새겨 볼 때 서재 장식용 그림으로 손색이 없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이후의 민화 어해도는 시공을 벗어나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에서 답답한 삶의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백성들의 희망, 해탈, 그리고 물고기의 상징적 의미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과 일상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려고 했던 우리민족의 미의식, 조형상의 특성, 진솔하고 직선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앞서 인용한 삼국지의 위지 왕숙 전에서 “매일 쪼들리고 바쁘지 않은 날이 없다 했는데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공감 가는 말인 듯하다. 그래도 해 저무는 밤에, 비 오는 날, 그리고 추운 겨울의 여가만 있으면 무엇을 하든 충분하다 하는데…. 어째든 바쁜 하루 속에 유유히 물속을 거니는 물고기 그림을 보고 잠깐의 여유를 즐기시라 기원한다.
<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June 18, 2020 at 06:5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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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입신출세 기원…福 물고 화풍에 들어온 물고기들 - 대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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