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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길을 묻다](30)바다와 물고기를 사랑한 노인 어부의 삶 -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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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에는 줄을 잘 긋지 않는다. 편한 자리에 누워 책장 넘기는 줄도 모르고 읽는 게 맛이다. 감당 못 할 물고기를 쫓던 늙은 어부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으로 책을 펴들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러다 몸을 일으켰다. 줄을 그으려면 아무래도 필기구가 필요했다.
사진가 로버트 카파가 찍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고를 읽고 있다. / 경향자료

사진가 로버트 카파가 찍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고를 읽고 있다. / 경향자료

<노인과 바다>(1952)가 이런 이야기였나. 이건 노인도 나도 피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계의 무거움에 대한 이야기, 젊은 날의 추억과 꿈에 대한 이야기, 희망과 후회에 대한 이야기, 자연과 맺는 우정에 대한 이야기, 무엇보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중에 다시 읽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했다.

<노인과 바다>는 1940년에 발표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년 만에 헤밍웨이의 재기를 알린 작품이었다. 헤밍웨이는 53세에 발표한 이 소설로 1953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1954년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인을 버티게 하는 바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가난하고 늙은 어부가 바다에 나가 큰 물고기를 잡았다. 작은 배에 묶어 돌아오다 상어들에게 뜯겨 결국 뼈만 남은 물고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물고기를 팔아야 먹고사는 가난한 어부에게 물고기 뼈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

앙상한 줄거리를 놓고 보면 그렇다. 소설의 맨 첫 문단에서 노인의 배는 영원한 패배의 깃발처럼 보이는 돛을 달고 있다고 묘사된다. 노인은 이미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노인이 다섯 살부터 배에 데리고 다니던 소년의 부모는 노인의 운이 다했다고 소년을 다른 배로 보냈다.

하지만 노인은 희망과 자신감을 잃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그는 바다로 나아간다. 그에게 바다는 호의를 베풀거나 거절하는 여성인 ‘라 마르(la mar)’였다. 스페인어로 바다를 다정하게 부르는 말이다. 잘 나가는 젊은 어부들은 바다를 남성인 ‘엘 마르(el mar)’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바다는 경쟁자, 투쟁 장소, 적이라는 의미다.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 허세로 보일 만큼 낙천적이다. 노인은 낚싯줄을 바다에 정확하게 드리운다. 날치를 향해 덤벼드는 새와 만새기 떼를 본다. 경치를 구경하다가 야구 생각도 한다. 갑자기 수면 위의 찌가 물속으로 꺼졌다.

문학동네

문학동네

이제부터는 노인과 물고기의 대결이다. 노인은 물고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낚시에 관한 기술을 모두 동원한다. 온 힘으로 줄을 붙잡는다. 물고기의 요동으로 상처가 나고 손엔 피가 흐른다. 쉽게 끝나는 일이 아니다. 해가 지고 다시 뜨는데 배는 물고기에 끌려가고, 노인은 물고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줄을 붙들고 있다.

삶의 무게만 한 힘으로 물고기에 끌려가는 배 안에서 노인을 버티게 한 건 뭘까. 노인은 외로웠다. 그 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외쳐보지만, 소년은 없다. 노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건, 노인을 버티게 하는 건 바다다. 피어오르는 구름과 날아가는 물오리를 보며 노인은 “바다에서는 그 누구도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노인은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젊었을 적의 추억을 떠올린다. 한 술집에서 밤새 이어진 팔씨름을 이겼던 승리의 기억이다. 이제 노인은 배를 끌고 가는 물고기를 친구처럼 느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굶고 있는 물고기가 불쌍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노인은 잠을 잔다.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돌고래 떼, 자기 집 침대에 누워 자는 것, 길게 뻗은 황금빛 해변, 해변으로 내려오는 사자의 꿈을 꾼다. 노인은 행복했다고 적혀 있다.

바다로 나간 후 세 번째 태양이 떠오르고, 마침내 노인은 엄청나게 큰 물고기를 잡았다. 그럼 이건 성공에 대한 이야기일까. 물고기는 너무 컸다. 노인은 물고기를 배에다 묶었다. 노인은 물고기가 자신을 데리고 가는 건지 자신이 물고기를 데리고 가는 건지 혼돈스러워한다.

‘“하지만 사람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박살이 나서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를 당하진 않아.” 그래도 이렇게 되고 보니 저 물고기를 죽인 게 후회스럽군, 노인은 생각했다.’

오랜 시간 쫓은 물고기를 잡았지만 성공은 잠시뿐이었다. 노인의 작살에 맞은 물고기에서 피가 흘렀고, 피 냄새는 상어를 불렀다. 바다 깊은 곳에서 올라온 상어가 물고기를 공격했다.

노인은 상어가 물고기를 물어뜯을 때 자신이 물어뜯긴 것처럼 느꼈다. 노인은 상어를 죽이느라 줄도, 작살도 잃었다. 그래도 남은 물고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힘을 낸다. 좌절하지 않는다면 패배하지 않는다. 노인은 패배하지 않기 위해 노에다 칼을 묶어 새로 무기를 만든다.

뒤늦게 노인은 물고기를 죽인 것에 대해 후회를 한다. 노인은 배를 끌고 가는 물고기를 친구로 느꼈다. 그는 물고기가 살아 있을 때 사랑했고 죽은 뒤에도 사랑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해서라고 해도 물고기를 죽인 건 죄일 것만 같았다. 노인은 물고기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삶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성공에 대한 것도, 실패에 대한 것도 아니다. 패배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노인에게 물고기를 잡은 게 성공이 아니듯, 뜯어먹히고 뼈만 남은 물고기를 갖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 역시 실패가 아니다. 성공과 실패는 바다를 경쟁자, 투쟁의 장소, 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다. 노인은 다만 어부로서 생계에 진지했고, 바다와 물고기를 사랑했다.

이 이야기를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는 건, 이만한 나이를 먹고 보니 삶은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나온 삶에는 여러 성공과 실패가 섞여 있다. 내 낚싯줄에 어떤 물고기가 걸릴지 알 수 없듯, 성공도 실패도 내 뜻대로만 되지 않았다. 언제 물고기가 튀어올라 상처를 낼지 알 수 없듯, 삶의 모든 일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패배하지 않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헤밍웨이에게 배운 거다. 노인이 바다를 사랑하듯, 삶을 사랑할 것. 사랑 없이는 삶을 계속할 수 없다. 삶은 경쟁의, 투쟁의, 적이 있는 장소가 아니다. 삶은 피어오르는 구름이, 날아가는 물오리가, 친구처럼 느껴지는 물고기가 있는 바다와 같은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면, 내가 너무 일찍 달관할 걸까. 아니 오십이라면 이제는 어울리는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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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16, 2020 at 01:4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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